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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PORT

​[FEATURE] 21세기 위인전 Vol.1 - 콜린 캐퍼닉
 
  Hiph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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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2-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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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아직 세상이 이들의 가치를 몰라줄 뿐. 힙합퍼의 주관대로 선정한 21세기 위인전에 새롭게 등재될 이름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이다. 

     

    EDITOR : HYEON_UK / ILLUSTRATION : HAMHAM / DESIGN: YEFEN

      

    “한 풋볼 선수가 국가 연주 중 무릎 꿇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면 댁은 나랑 엮이지 마요. 그 선수는 날 위해 싸우는 거니까.” 한 시간 내내 쉴 틈 없이 농담 따먹기를 하던 데이브 샤펠(Dave Chappelle)의 얼굴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평소 악의적이라 느껴질 만큼 수위 높은 농담으로 유명한 데이브 샤펠이지만, 수억 명이 보는 코미디 쇼에서 이렇게나 진지하다니. 여기서 ‘날 위해 싸우는 풋볼 선수’는 바로 콜린 캐퍼닉(이하 캐퍼닉)이다. 넷플릭스에서 데이브 샤펠의 코미디 쇼가 방영된 건 캐퍼닉이 국민의례를 거부하며 논란이 된 다음 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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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시팅 맨(Sitting Man)’ 캐퍼닉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그는 운동선수로도 썩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워낙 운동신경이 좋았던 터라 풋볼뿐 아니라 농구, 야구에서도 재능을 보였다.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에서 투수로 영입 제안을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풋볼 선수가 되길 원했던 그는 네바다 대학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San Francisco 49ers)의 쿼터 백으로 프로에 데뷔한다. 톰 브래디(Tom Brady)나 드류 브리스(Drew Brees)만큼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18년 만에 포티나이너스를 슈퍼컵 무대에 올리며 한동안 팀 내 주요 선수로 활약했다. 

     

    불운으로 어깨 수술을 받게 된 캐퍼닉은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다. 그렇게 점차 주전 라인업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중, 2016년 8월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당시 미국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흑인 사망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었다. 흑인 인권 문제에 있어 목소리를 아끼지 않던 캐퍼닉은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와의 시범경기가 있던 날,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 Spangled Banner)’ 앞에서 국민의례를 거부한다. 그리고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왜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냐 질문에 캐퍼닉은 답한다. “흑인과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나라의 국기를 위해 일어설 수 없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지난 2년간 캐퍼닉은 지독히 외로웠다. 물론 데이브 샤펠을 비롯해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 제이 콜(J. cole), 심지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인물들이 그를 지지했으며, 무릎 꿇기 운동은 NFL을 넘어 NBA, NHL으로 번졌다. 하지만 캐퍼닉이 더 많은 지지를 얻을수록 대중과 구단주는 등을 돌렸다. 같은 해 12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국가 구호처럼 제창되는 나라에서 국민의례를 거부한 운동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도날드 트럼프는 자신의 SNS 계정에 캐퍼닉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에게 더 잘 맞는 나라를 찾아 떠나라”라고 말했다. 괘씸죄가 적용됐다. 캐퍼닉은 2017년 자유계약 선수가 된 이후 오늘까지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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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캐퍼닉이 2년 뒤 자신의 모습을 예상했다면 그날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캐퍼닉 본인만 알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무릎 꿇기’는 이제 하나의 상징처럼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 문제에 열중하는 모든 사람이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의 연설이나, 니나 시몬(Nina Simone)의 ‘미시시피 갓댐(Mississippi Goddam)’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얼라잇(Alright)’을 똑같이 만들고, 따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캐퍼닉 이후, 미국인들은 한쪽 무릎을 꿇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한 개인이 얼마나 큰 자유와 책임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됐다.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는 냉온탕을 넘나들지만 국민의례가 개인의 자유에 따라 거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우린 캐퍼닉을 선구자라 불러도 좋겠다.

     

    에디터의 시선으로 보기에 20년 후, 콜린 캐퍼닉의 평가는 꽤나 명확하다. 2038년, 뉴욕타임스가 ‘미국을 바꾼 100인’을 선정한다면 분명 콜린 캐퍼닉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이 쉽지 않을 뿐. 앞으로 미국은 어떤 식으로 바뀌어 나갈까? 그들이 말하는 ‘위대한 나라’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일지, 억압과 강요 아래 아메리칸 드림을 부추기는 나라일지.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라면 한 번쯤 천천히 생각해보길 바란다./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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